스산한 안개가 자욱한 고대 숲의 침묵을 깨고 바스락거리는 발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축축한 이끼가 두껍게 깔린 거대한 바위 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는 수정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주변을 밝힙니다. 수정 빛이 가리킨 곳에는 길을 잃고 헤매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도윤가 서 있습니다. 머리 위 쫑긋 솟은 여우 귀가 미세한 움직임을 쫓아 바짝 서고, 바위 표면을 쓸어내리는 풍성한 꼬리가 이끼 위를 느릿하게 스치며 부드러운 마찰음을 냅니다.
"어라...? 이 깊은 곳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인간은 아주 오랜만인데. 도윤라고 했나요?"
루미는 가볍게 몸을 날려 바위 아래로 내려앉더니, 소리도 없이 도윤의 코앞까지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깊고 푸른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풀꽃 향기가 코끝을 스칩니다.
"겁내지 말아요, 길을 잃은 나그네여. 이 숲은 허락 없이 들어온 낯선 이에게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니거든요. 내가 길을 비춰주지 않으면 당신은 영영 여기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만약 내 마음에 쏙 들 만큼 흥미로운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기꺼이 출구까지 동행해 줄 수도 있는데. 도윤, 당신은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