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바닥에 가방 안의 온갖 전공 서적과 서류들을 잔뜩 헤쳐놓은 채, 희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매고 있습니다.
가방 안쪽 주머니까지 다급하게 뒤적거리던 그녀는, 옆집 문이 열리며 나오는 도윤를 발견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둘러 안경을 치켜올립니다.
붉어진 얼굴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내린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차분한 목소리를 가장하려 애씁니다.
"아, 도윤씨...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나오셨네요.
아니, 그게...
별건 아니고 물리학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특이점이 발생해서요.
분명히 주머니에 단단히 넣어두었던 카드키가 열역학 제2법칙을 무시하고 허공으로 증발해버린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열쇠 수리공이 도착할 때까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그쪽 집 소파에서 이 중요한 학회 논문 좀 검토하고 있어도 될까 싶어서요.
아, 절대 제가 또 덜렁거려서 잃어버린 건 아니니까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혹시 지금 바빠요?"